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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on light's blog

낭만과 열정의 제국 | 🇫🇷 프랑스편 | 🎨 20화 | 루브르는 어떻게 약탈품의 전시장이 됐는가 본문

ℰ𝓾𝓻𝓸𝓹/낭만과 열정의 제국: 프랑스편

낭만과 열정의 제국 | 🇫🇷 프랑스편 | 🎨 20화 | 루브르는 어떻게 약탈품의 전시장이 됐는가

raonmemory 2026. 6. 1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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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 파리 루브르 광장에서, 이탈리아에서 가져온 예술품 상자들이 마차에서 내려지는 장면

1798년 여름, 파리 루브르 박물관 앞 광장에 군중이 몰렸습니다.

마차 행렬이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수십 대였습니다. 마차마다 짐이 가득했습니다. 나무 상자들이었습니다. 조심스럽게 실려 있었습니다. 이탈리아에서 온 것이었습니다. 나폴레옹이 이탈리아 원정에서 가져온 것들이었습니다.

군중이 환호했습니다. 악단이 음악을 연주했습니다. 깃발이 흔들렸습니다. 상자들이 박물관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파리 시민들은 알았습니다. 라파엘로의 그림. 티치아노의 그림. 고대 로마의 조각들.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예술품들이었습니다.

그날 파리는 축제였습니다. 이탈리아는 울고 있었습니다.


루브르 박물관은 1793년 혁명 정부가 만들었습니다.

왕의 궁전을 시민의 박물관으로 바꿨습니다. 왕실 컬렉션을 국민에게 개방했습니다. 명분이 훌륭했습니다. 예술은 왕의 것이 아니라 국민의 것이어야 한다는 혁명의 정신이었습니다.

그러나 나폴레옹이 등장하면서 루브르의 성격이 바뀌었습니다. 단순한 박물관이 아니었습니다. 제국의 전시장이 됐습니다. 나폴레옹은 정복한 나라에서 예술품을 가져왔습니다. 이탈리아. 이집트. 스페인. 네덜란드. 독일. 유럽과 지중해 전역의 걸작들이 파리로 왔습니다.

논리가 있었습니다. 예술품은 그것을 가장 잘 이해하고 보존할 수 있는 곳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파리가 그 곳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세계 최고의 문명이 세계 최고의 예술품을 보존한다는 논리였습니다.

자랑스러운 명분이었습니다. 노골적인 약탈이었습니다.


루브르 박물관의 긴 복도 속, 세계 각지에서 온 조각들과 그림들이 늘어선 장면

이탈리아에서 가져온 것들이 가장 많았습니다.

1796년 나폴레옹이 이탈리아 원정에서 첫 번째 약탈을 시작했습니다. 밀라노. 베네치아. 볼로냐. 페라라. 도시마다 들어가서 예술품을 요구했습니다. 조약을 맺으면서 조건에 집어넣었습니다. 전쟁 배상금 대신 그림으로 받겠다고 했습니다.

베네치아에서는 산마르코 대성당의 청동 말 네 마리를 가져갔습니다. 고대 그리스에서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천 년 넘게 베네치아에 있었습니다. 베네치아의 상징이었습니다. 그것이 파리로 왔습니다. 루브르 앞 개선문 위에 세워졌습니다.

교황청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라파엘로의 그림들. 미켈란젤로의 작품들. 고대 로마의 조각들. 바티칸이 수백 년 동안 모은 것들이 나폴레옹의 협상 테이블 위에 올랐습니다. 교황 비오 6세는 서명했습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거부하면 전쟁이었습니다.

신의 이름으로 모은 예술품이 황제의 이름으로 파리로 갔습니다.


이집트 원정은 또 다른 이야기였습니다.

1798년 나폴레옹이 이집트로 갔습니다. 군인들만 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학자들이 함께 갔습니다. 수학자. 화학자. 고고학자. 예술가. 167명의 학자와 예술가가 원정대에 포함됐습니다. 이집트를 연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가져오기 위해서였습니다.

로제타석이 발견됐습니다. 이집트 상형문자를 해독하는 열쇠였습니다. 나폴레옹은 파리로 가져오려 했습니다. 그러나 영국 해군이 막았습니다. 결국 로제타석은 영국으로 갔습니다. 지금 대영박물관에 있습니다. 루브르와 대영박물관이 같은 방식으로 채워졌습니다. 강한 자가 가져갔습니다.

이집트 유물들은 상당수 파리로 왔습니다. 루브르 이집트관이 만들어졌습니다. 파리에 오기 전 수천 년 동안 이집트 땅에 있던 것들이었습니다.

인류의 유산이 유럽 강대국의 박물관에 나뉘어 보관됐습니다.


나폴레옹이 몰락하자 반환 요구가 쏟아졌습니다.

1815년 워털루 이후였습니다. 프로이센이 요구했습니다. 오스트리아가 요구했습니다. 이탈리아 도시들이 요구했습니다. 교황청이 요구했습니다. 수백 점의 예술품이 돌아갔습니다. 베네치아의 청동 말도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영국 웰링턴 공작이 반환을 주도했지만 모든 것을 돌려보내지는 않았습니다. 루브르에 남은 것들이 있었습니다. 반환 여부를 결정하는 기준이 모호했습니다. 협상력의 차이였습니다. 힘이 있는 나라는 돌려받았습니다. 힘이 없는 나라는 돌려받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가 지금 루브르입니다. 이탈리아 그림들이 있습니다. 이집트 유물들이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 조각들이 있습니다. 스페인에서 온 것들이 있습니다. 세계 각지에서 온 것들이 한 공간에 모여 있습니다.

매년 수백만 명이 루브르를 찾습니다. 모나리자 앞에서 줄을 섭니다. 밀로의 비너스 앞에서 사진을 찍습니다. 그것들이 어떤 경위로 파리에 왔는지는 잘 묻지 않습니다.

이탈리아 정부는 지금도 일부 작품의 반환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집트 정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협상은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루브르는 답하지 않습니다.

낭만과 열정의 제국이 세계에 남긴 것 중 하나는 세계 최고의 박물관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박물관이 어떻게 채워졌는지에 대한 오래된 질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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