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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on light's blog

낭만과 열정의 제국 | 🇫🇷 프랑스편 | 🎵 18화 | 나폴레옹과 베토벤, 영웅 교향곡의 배신 본문

ℰ𝓾𝓻𝓸𝓹/낭만과 열정의 제국: 프랑스편

낭만과 열정의 제국 | 🇫🇷 프랑스편 | 🎵 18화 | 나폴레옹과 베토벤, 영웅 교향곡의 배신

raonmemory 2026. 6. 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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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4년 빈의 낡은 아파트에서 베토벤이 악보 표지를 힘껏 구기는 장면

1804년 봄, 빈의 한 아파트에서 베토벤이 악보를 집어 들었습니다.

표지에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보나파르트.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베토벤이 2년 가까이 작업한 교향곡이었습니다. 혁명의 영웅에게 바치는 음악이었습니다. 자유. 평등. 새로운 세계. 베토벤이 믿었던 것들이 그 악보 안에 들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자 페르디난트 리스가 소식을 가져왔습니다. 나폴레옹이 스스로 황제가 됐다고 했습니다. 베토벤이 악보를 내려쳤습니다. 표지를 찢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그도 결국 보통 인간에 불과하다고. 이제 인권을 짓밟고 자신의 야망만 채울 것이라고.

그 순간 영웅 교향곡의 헌정이 바뀌었습니다. 나폴레옹을 향한 음악이 영웅이라는 개념 자체를 향한 음악이 됐습니다.


베토벤이 나폴레옹에게 열광했던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1790년대 유럽의 젊은 지식인들에게 나폴레옹은 혁명의 완성이었습니다. 프랑스 혁명이 내건 자유와 평등을 군사적으로 실현하는 존재처럼 보였습니다.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의 억압 아래 있던 빈에서 베토벤은 그 메시지를 들었습니다. 봉건적 질서를 무너뜨리는 영웅. 새로운 세계를 여는 인물.

베토벤은 음악으로 그것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3번 교향곡이 그 작업이었습니다. 기존 교향곡과 달랐습니다. 규모가 컸습니다. 구조가 복잡했습니다. 1악장만으로도 기존 교향곡 전체 길이에 맞먹었습니다. 장례 행진곡이 2악장으로 들어왔습니다. 영웅의 죽음과 부활이었습니다. 그 모든 것이 나폴레옹을 향한 것이었습니다.

표지에 보나파르트라고 적었습니다. 헌정 준비가 됐습니다. 그때 소식이 왔습니다.

베토벤이 2년의 작업을 담은 표지를 찢은 것은 단순한 분노가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믿었던 것이 무너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베토벤은 교향곡을 폐기하지 않았습니다.

표지만 바꿨습니다. 보나파르트 대신 에로이카라고 썼습니다. 이탈리아어로 영웅이라는 뜻이었습니다. 특정 인물이 아니라 영웅이라는 개념에 바치는 음악이 됐습니다. 부제가 붙었습니다. 한 위대한 인물의 기억을 기리기 위해.

1805년 빈에서 초연됐습니다. 반응이 엇갈렸습니다. 너무 길다는 비판이 나왔습니다. 너무 복잡하다는 비판도 나왔습니다. 한 청중은 갤러리에서 외쳤습니다. 다 크로이처를 1크로이처에 드리겠다고. 그만큼 지루하다는 조롱이었습니다.

그러나 일부는 달랐습니다. 음악의 역사가 바뀌었다는 것을 느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교향곡이 오락에서 예술로 넘어가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순간을 만든 것이 나폴레옹에 대한 배신감이었습니다.

분노가 걸작을 만들었습니다.


1804년 빈 콘서트홀에서 베토벤의 ‘에로이카’ 교향곡 초연 장면

나폴레옹이 빈을 점령했을 때 베토벤은 그 도시에 있었습니다.

1805년과 1809년 두 차례였습니다. 프랑스 군대가 빈에 들어왔습니다. 포격 소리가 울렸습니다. 베토벤은 지하실로 내려갔습니다. 쿠션으로 귀를 막았습니다. 이미 청력이 나빠지고 있었습니다. 포격 소리가 더 악화시킬까 봐 두려웠습니다.

그 지하실에서 베토벤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기록에 없습니다. 나폴레옹을 향한 분노가 더 커졌는지. 아니면 그 혼란 속에서 음악을 생각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시기 베토벤은 계속 작곡했습니다. 피아노 소나타 열정. 4번 피아노 협주곡. 빈이 점령된 혼란 속에서 음악이 나왔습니다.

1809년 나폴레옹이 빈에 있던 시기 베토벤의 후원자 중 하나가 제안했습니다. 나폴레옹에게 곡을 바치면 어떻겠느냐고. 베토벤은 거부했습니다. 단호하게. 그 후원자와의 관계가 어색해졌지만 바꾸지 않았습니다.

음악을 팔지 않는다는 것이 베토벤의 선이었습니다.


나폴레옹이 몰락한 뒤 흥미로운 일이 있었습니다.

1821년 나폴레옹이 세인트헬레나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베토벤이 말했습니다. 내가 그 사건을 위한 음악을 이미 작곡했다고. 에로이카 2악장 장례 행진곡을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17년 전 분노로 찢어버린 표지. 그러나 음악은 남아있었습니다. 나폴레옹의 죽음을 위한 장례 행진곡이 이미 준비돼 있었습니다. 베토벤이 의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됐습니다.

적을 위한 음악이 적의 장례를 장식했습니다.

베토벤은 1827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에로이카는 지금도 연주됩니다. 나폴레옹이 황제가 됐다는 소식에 분노한 한 음악가의 이야기가 그 안에 담겨 있습니다.

지금 그 악보 표지 사본이 빈 악우협회 도서관에 있습니다. 보나파르트라고 적혔다가 지워진 자국이 보입니다. 연필로 힘껏 지운 흔적입니다. 그 흔적이 나폴레옹과 베토벤의 관계를 가장 정확하게 보여줍니다.

낭만과 열정의 제국에서 가장 위대한 음악 하나가 배신감에서 탄생했습니다. 영웅을 믿었던 음악가가 영웅을 잃고 나서야 진짜 영웅을 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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