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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on light's blog

8화. 표현하지 않는 삶은 존재할 수 있는가 본문

𝓔𝓬𝓸𝓷𝓸𝓶𝔂 𝓪𝓷𝓭 𝓛𝓲𝓯𝓮𝓽𝓻𝓮𝓷/06. ❓나의 소비, 누구의 설계인가

8화. 표현하지 않는 삶은 존재할 수 있는가

raonmemory 2025. 12. 14.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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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 책상, 삭제 안내 뜬 폰과 펼친 책.

계정을 지운 지 석 달째

친구 하나가 석 달 전 모든 소셜미디어 계정을 지웠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으면 특별한 이유는 없다고 합니다. 그냥 어느 날 문득, 화면 속의 나와 화면 밖의 내가 너무 다르게 느껴져서 정리했다는 것입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냐고 물으면 그냥 지낸다는 짧은 답이 돌아옵니다. 예전 같으면 사진과 글로 몇 번은 확인했을 근황을, 이제는 직접 만나야만 알 수 있습니다.

그 친구를 보며 궁금해졌습니다.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아무것도 보여 주지 않는 삶은 지금 시대에 정말 가능한 것일까요. 그리고 그렇게 사는 사람은 존재감이 옅어지는 것일까요, 아니면 더 온전해지는 것일까요.

 

존재는 증명이 필요한가

표현이 당연해진 사회에서는 보이지 않는 사람이 마치 없는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친구 목록에서 이름이 사라지고, 근황을 알리는 게시물이 끊기면, 주변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도 그 사람의 존재감은 서서히 옅어집니다. 실제로는 매일 밥을 먹고 일을 하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이 현상은 존재와 표현이 얼마나 강하게 엮여 있는지를 보여 줍니다. 존재하기 위해 표현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사실은 표현하는 존재만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다는 암묵적인 규칙에 가깝습니다. 규칙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규칙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낯설게 여겨집니다.

그러나 존재와 표현은 원래 다른 것입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숲속의 나무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듯, 기록되지 않은 하루도 사라진 하루는 아닙니다. 다만 사회적으로 확인되지 않을 뿐입니다.

실제로 오래전에는 하루하루를 기록하지 않고도 삶이 온전히 인정받았습니다. 일기조차 남기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의 하루도, 그 하루를 함께 산 가족과 이웃의 기억 속에서 충분히 존재했습니다. 존재를 증명하는 방식이 기록에서 관계로, 다시 관계에서 화면 속 기록으로 옮겨 온 것은 아주 최근의 변화입니다.

 

표현하지 않기로 한 사람들의 이유

표현을 멈춘 사람들의 이유는 제각각입니다. 비교에 지쳐서, 보여 주기 위한 삶에 회의를 느껴서, 혹은 그저 더 이상 궁금해하지 않아서인 경우도 있습니다. 공통점이 있다면 그 선택이 대개 무언가를 잃는 결정이 아니라 무언가를 되찾는 결정으로 경험된다는 점입니다.

석 달 동안 계정을 지운 친구는 처음 몇 주는 허전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오히려 하루가 더 길게 느껴진다고 말했습니다. 남기고 편집하고 반응을 확인하는 데 쓰던 시간이 고스란히 그 순간에 머무는 시간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표현을 멈춘 자리에 다른 무언가가 채워진 셈입니다.

물론 모두에게 같은 결과가 오는 것은 아닙니다. 일이나 인간관계가 표현을 전제로 이루어지는 사람에게는 표현하지 않는 선택이 실제로 손해가 되기도 합니다. 표현하지 않을 자유는 조건 없이 누구에게나 같은 무게로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표현을 멈추기로 한 결정은 순전히 개인의 취향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회복의 방법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위험이 되기도 합니다. 이 차이를 무시하고 표현하지 않는 삶을 무조건 미덕으로 추켜세우는 것도, 무조건 도피로 깎아내리는 것도 성급한 판단입니다.

창가 의자에서 통화하는 뒷모습

보이지 않아도 이어지는 관계

표현을 멈춘 사람과의 관계는 방식이 달라질 뿐 끊어지지 않습니다. 화면으로 확인하던 근황은 이제 직접 연락하고 만나야 알 수 있는 근황이 되었습니다. 번거로워진 만큼 그 관계는 오히려 더 뜻깊어졌다는 이야기도 듣습니다. 매번 화면으로 확인할 수 있을 때는 굳이 연락하지 않던 사람들이, 이제는 서로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전화를 겁니다.

이 변화는 관계의 밀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자주 보이는 근황이 반드시 가까운 관계를 뜻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드물지만 진심이 담긴 연락이 더 깊은 연결을 만들기도 합니다. 표현의 양과 관계의 깊이는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 친구를 통해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표현과 침묵 사이의 선택지

표현하지 않는 삶이 모두에게 정답일 수는 없습니다. 표현을 통해 위로받고 힘을 얻는 사람도 분명 있고, 그 표현이 다른 사람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경우도 많습니다. 중요한 것은 표현과 침묵 둘 다가 선택지로 남아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사회의 문제는 표현하지 않는 것이 이상하게 여겨지는 분위기에 있습니다. 표현이 기본값이 되면 침묵은 설명이 필요한 예외가 됩니다. 두 가지가 똑같이 자연스러운 선택지로 인정될 때, 사람들은 비로소 각자에게 맞는 방식을 편안하게 고를 수 있습니다.

직장에서 누군가 소셜미디어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을 때 돌아오는 다소 놀란 반응도 이 분위기를 잘 보여 줍니다. 그 반응 자체가 표현이 얼마나 당연한 기본값이 되었는지를 드러내는 작은 증거입니다.

 

숲속의 나무는 여전히 자란다

그 친구는 요즘도 여전히 어디선가 밥을 먹고 일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있습니다. 다만 그 하루들이 화면에 남지 않을 뿐입니다. 오랜만에 만난 자리에서 들려주는 몇 달치 이야기는 화면으로 나눠 보던 소식보다 훨씬 길고 진했습니다.

결국 질문은 여기에 남습니다. 존재를 확인시키는 것은 기록일까요, 아니면 그 기록이 없어도 계속되는 삶 자체일까요. 그리고 우리는 언제부터 그 둘을 같은 것으로 여기기 시작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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