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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브랜드는 나를 표현하는가, 나를 지배하는가 본문

가방 로고를 밖으로 돌려 매는 습관
몇 년째 같은 브랜드의 가방을 메고 다니는 사람이 있습니다. 새 가방을 살 때도 다른 브랜드는 눈에 들어오지 않고, 로고가 잘 보이는 각도로 어깨끈을 돌려 매는 버릇도 있습니다. 이 브랜드를 왜 좋아하냐고 물으면 품질이 좋아서라고 답하지만, 사실 같은 값이면 다른 브랜드의 품질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도 압니다.
브랜드는 물건 이상의 무언가를 담고 있습니다. 그 로고를 볼 때 떠오르는 이미지, 그 브랜드를 쓰는 사람들과 함께 있다는 소속감, 그리고 그 브랜드가 나를 어떻게 보이게 하는지에 대한 기대가 물건 값 안에 함께 담겨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가방을 고른 것은 나일까요, 아니면 그 브랜드가 오랫동안 심어 놓은 이미지일까요.
브랜드가 나를 대신 설명해 줄 때
브랜드를 고르는 일은 자기소개의 한 방식이 되었습니다. 어떤 브랜드의 옷을 입고, 어떤 브랜드의 차를 타는지가 그 사람의 취향과 형편, 심지어 성격까지 짐작하게 만드는 단서로 쓰입니다.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브랜드 하나로 많은 것이 전달되니, 이는 분명 효율적인 표현 수단입니다.
이 효율성은 사람들이 브랜드에 기꺼이 웃돈을 지불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비슷한 품질의 무명 제품보다 몇 배 비싼 값을 치르면서도, 그 값에는 품질이 아니라 그 브랜드가 상징하는 이미지의 값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소비자도 어느 정도 알고 있습니다. 그 이미지를 사는 것이 곧 나를 표현하는 방법이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특정 브랜드를 쓰는 사람들끼리 느끼는 유대감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같은 브랜드의 자동차를 타는 사람들이 온라인 모임을 만들고 정보를 나누는 모습은, 브랜드가 단순한 상품을 넘어 하나의 공동체를 만드는 힘이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입학이나 취업처럼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 특정 브랜드의 정장이나 시계를 고르는 관행도 이 연장선에 있습니다. 그 물건이 실제로 능력을 증명하지는 않지만, 준비된 사람이라는 인상을 빠르게 전달하는 데는 효과적입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짧은 순간에 자신을 설명해야 할 때 브랜드의 힘을 가장 적극적으로 빌립니다.

표현의 도구가 기준이 되는 순간
문제는 브랜드가 나를 표현하는 도구에서 나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자리를 옮길 때 시작됩니다. 어떤 브랜드를 쓰지 않으면 어딘가 부족해 보일 것 같은 불안, 남들이 다 아는 브랜드가 아니면 선물로 부끄러울 것 같은 마음이 그 신호입니다. 이때부터 브랜드는 나를 드러내는 수단이 아니라 내가 맞춰야 할 기준이 됩니다.
자녀의 신발이나 가방을 브랜드로 고르는 것도 비슷한 심리가 작동합니다. 아이가 다른 친구들과 비교당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특정 브랜드에 대한 의존으로 이어지고, 그 의존은 아이에게도 은연중에 전해집니다. 브랜드가 소속감을 주는 만큼, 그 브랜드가 없을 때의 소외감도 함께 키우는 셈입니다.
이렇게 브랜드가 기준이 되면, 그 브랜드의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따라가야 한다는 압박도 함께 커집니다. 어제까지 만족스럽던 물건이 새 모델이 나오는 순간 부족한 것으로 느껴지는 경험은 낯설지 않을 것입니다.
명품 매장 앞에 줄을 서는 오픈런 풍경도 이 압박이 극단적으로 드러난 모습입니다. 한정판이라는 말이 붙는 순간 그 물건의 실용적 가치와 상관없이 갖지 못하면 뒤처진다는 조바심이 커집니다. 몇 시간을 기다려 손에 넣은 물건이 정작 몇 번 쓰이지 않고 보관함에 남는 경우도 드물지 않은데, 그 사실은 손에 넣기 전에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브랜드 없이도 나를 설명할 수 있는가
브랜드가 강력한 표현 수단이 된 것은 반대로 말하면, 브랜드 없이 나를 설명하는 언어가 그만큼 빈약해졌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이야기를 가진 사람인지 직접 말하는 대신, 로고 하나로 설명을 대신하려는 습관이 쌓이면 정작 나를 표현하는 다른 능력은 무뎌집니다.
브랜드에 기대지 않고 자신을 설명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이 차이를 압니다. 좋아하는 이유를 구체적으로 말하고, 왜 그 물건을 골랐는지 자신의 언어로 설명하는 과정은 번거롭지만, 그 과정을 거친 표현은 로고 하나보다 훨씬 오래 남습니다.
브랜드를 완전히 배제하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브랜드가 편리한 표현의 도구라는 사실과, 그것이 유일한 표현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함께 기억하는 것이 균형입니다.
균형을 지키는 작은 방법 하나는 새 물건을 살 때 브랜드가 아니라 용도를 먼저 적어 보는 것입니다. 이 가방으로 무엇을 넣고 다닐지, 이 옷을 어디에 입을지를 먼저 정하고 나면, 그 조건에 맞는 선택지 가운데 브랜드는 여러 기준 중 하나로 자연스럽게 자리를 낮춥니다.
오래 쓴 물건이 낡아 갈 때 그 흔적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태도도 도움이 됩니다. 낡음을 감추기 위해 새 브랜드 제품으로 서둘러 바꾸기보다, 오래 쓴 흔적 자체를 이야기로 받아들이면 브랜드의 새 이미지에 기대지 않고도 자신을 설명할 거리가 하나 더 생깁니다.
로고를 안으로 돌려 매어 본 날
어느 날 문득 로고를 안쪽으로 돌려 매고 나가 보았습니다.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고, 하루 종일 신경 쓰이지도 않았습니다. 그 가방이 여전히 편하고 마음에 든다는 사실은 로고의 방향과 상관없이 그대로였습니다.
결국 질문은 여기에 남습니다. 내가 이 브랜드를 고른 이유 중에서, 로고가 보이지 않아도 여전히 유효한 이유는 몇 가지나 될까요. 그리고 그 이유들만으로도 나는 나를 충분히 설명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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