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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on light's blog

2화. 무능한 충성은 안전인가, 아니면 조직의 위험인가 본문

𝓒𝓾𝓵𝓽𝓾𝓻𝓮 & 𝓗𝓾𝓶𝓪𝓷𝓲𝓽𝓲𝓮𝓼/05. 👔 리더십과 조직의 두 얼굴

2화. 무능한 충성은 안전인가, 아니면 조직의 위험인가

raonmemory 2025. 8. 2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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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 마루에 앉아 풍경을 감상하는 선비들.

의심 없이 곁에 두는 사람

인사이동 시즌마다 유독 흔들리지 않는 자리가 있습니다. 성과는 평범하지만, 오랫동안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사람의 자리입니다. 상사는 그 사람을 두고 큰 고민을 하지 않습니다. 배신할 위험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이미 마음이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충성스러운 사람은 관리하기 쉽습니다. 지시를 거스르지 않고, 뒤에서 딴마음을 품지 않습니다. 그래서 많은 조직은 능력보다 충성을 앞세워 사람을 곁에 둡니다. 위험을 줄이는 가장 손쉬운 방법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위기를 한 번 겪은 조직일수록 이 경향은 더 강해집니다. 배신의 아픔을 겪은 리더는 다음번에는 능력보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을 먼저 찾게 되고, 그 기준은 조직 전체의 인사 원칙으로 조용히 자리 잡습니다.

문제는 이 기준이 한 번 자리를 잡으면 좀처럼 다시 논의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시간이 지나 위기의 기억이 흐려져도, 충성을 우선하는 관행만은 관성처럼 남아 다음 세대의 인사 결정에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충성심은 능력의 공백을 메워주지 않는다

그러나 충성심과 업무 역량은 전혀 다른 축 위에 있습니다. 아무리 성실하고 순종적이어도,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부족하면 그 공백은 고스란히 남습니다. 충성은 신뢰의 문제이고, 역량은 결과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조직이 이 둘을 슬며시 하나로 묶어버립니다. 충성스러운 사람이니 알아서 잘 해낼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실제 역량을 점검하는 절차를 건너뛰게 만듭니다. 신뢰가 검증을 대신하는 순간, 조직은 스스로 눈을 가리는 셈입니다.

이 착시는 특히 성과를 즉시 확인하기 어려운 업무일수록 오래 지속됩니다. 결과가 눈에 보이지 않으니, 그 자리를 채운 사람의 태도만으로 역량을 짐작하게 되고, 그 짐작은 좀처럼 틀렸다고 검증되지 않은 채 굳어져 갑니다.

 

안전하다는 착각이 만드는 진짜 위험

무능한 충성파가 핵심 업무를 맡는 순간, 문제는 조용히 자라기 시작합니다. 잘못된 판단은 늦게 발견되고, 처리하지 못한 문제는 다음 담당자에게 그대로 넘어갑니다. 배신의 위험은 없지만, 실패의 위험은 오히려 커지는 구조입니다.

더 심각한 것은, 이 위험이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배신은 사건이 되어 즉시 눈에 띄지만, 무능으로 인한 손실은 서서히 누적되다가 어느 순간 되돌리기 힘든 크기로 불어나 있습니다. 조용한 위험이 가장 늦게 발견되는 위험이 되는 이유입니다.

게다가 그 손실은 대개 한 사람의 책임으로 정리되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방치된 문제이기에, 문제를 처음 만든 사람보다 뒤늦게 그 자리를 이어받은 사람이 책임을 떠안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결국 조직은 배신이라는 명확한 위험 대신, 이름 붙이기 애매한 무능이라는 위험을 떠안게 됩니다. 눈에 보이는 적이 사라진 자리에,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손실이 대신 들어서는 셈입니다.

 

성벽 위에서 지평선을 바라보는 고려 장수

충성을 우선하는 조직과 능력을 우선하는 조직

충성을 우선하는 조직은 단기적으로 안정적입니다. 반발이 적고, 지시가 매끄럽게 실행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중요한 자리에 실력 있는 사람이 아니라 순응적인 사람이 채워지고, 조직의 문제 해결 능력은 서서히 무뎌집니다.

능력을 우선하는 조직은 반대로 초반에 더 시끄럽습니다. 서로 다른 의견이 부딪히고, 순응하지 않는 사람들과 마찰이 생깁니다. 그러나 그 마찰 속에서 문제는 더 빨리 드러나고, 해결책도 더 빨리 찾아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두 조직의 차이는 위기가 찾아왔을 때 가장 선명해집니다. 충성 중심의 조직은 결속은 단단하지만 해법을 찾는 속도가 느리고, 능력 중심의 조직은 갈등은 잦지만 대응은 훨씬 민첩한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충성은 때로 문제를 가리는 방패가 된다

무능한 충성파를 감싸는 조직에는 또 다른 함정이 있습니다. 그 사람의 실수가 드러나도, 오랜 충성을 근거로 책임을 가볍게 넘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조직에 대한 헌신이 실수에 대한 면죄부처럼 작동하는 것입니다.

이런 식의 관용이 반복되면, 다른 구성원들은 실력을 키우는 대신 충성을 표현하는 데 힘을 쏟기 시작합니다. 조직 전체의 기준이 능력에서 관계로 서서히 옮겨가는 순간, 위험은 한 사람의 문제를 넘어 조직 전체의 체질 문제가 됩니다.

결국 실력 있는 구성원들이 먼저 지쳐 조직을 떠나는 역설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한다는 실망이 쌓이면, 능력 있는 사람일수록 다른 곳에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길을 찾게 됩니다.

남은 자리는 다시 충성을 앞세운 사람들로 채워지고, 조직은 스스로 인지하지 못한 채 같은 순환을 반복하게 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 순환에서 벗어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집니다.

 

우리가 지키려는 것은 안전인가, 무사안일인가

충성스러운 사람을 곁에 두고 싶은 마음은 자연스럽습니다. 다만 그 선택이 정말 조직을 안전하게 만드는지, 아니면 당장의 불편함만 피하게 해주는 것인지는 다시 물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안전과 무사안일은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방향이 다릅니다. 안전은 위험을 줄이는 선택이고, 무사안일은 위험을 미루는 선택입니다. 우리가 지금 곁에 두고 있는 신뢰가 둘 중 어느 쪽에 더 가까운지, 그 답은 아마도 문제가 터진 뒤에야 분명해질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정말 두려워하는 것은 무능함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무능함을 지금 마주하고 바로잡아야 한다는 불편함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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