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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on light's blog

1화. 배신자는 처단해야 할 위험인가, 아니면 품어야 할 가능성인가 본문

𝓒𝓾𝓵𝓽𝓾𝓻𝓮 & 𝓗𝓾𝓶𝓪𝓷𝓲𝓽𝓲𝓮𝓼/05. 👔 리더십과 조직의 두 얼굴

1화. 배신자는 처단해야 할 위험인가, 아니면 품어야 할 가능성인가

raonmemory 2025. 8. 1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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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가 가득한 서고 앞을 서성이는 문관.

능력 하나로 채용을 결정하던 순간

면접장에서 이력서 한 장이 특별하게 눈에 띌 때가 있습니다. 실적은 화려하고, 말투는 자신감이 넘치고, 질문에 대한 답변마다 막힘이 없습니다. 채용 담당자는 그 순간 이미 마음을 정한 것처럼 고개를 끄덕입니다.

능력이 뛰어난 사람일수록 신뢰도 함께 검증됐을 것이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따라붙습니다. 실력을 증명한 사람이니, 그 실력을 얻기까지의 태도도 믿을 만할 것이라는 짐작입니다.

이런 장면은 채용에서만 벌어지지 않습니다. 승진 심사에서도, 프로젝트 리더를 정하는 회의에서도 같은 논리가 반복됩니다. 숫자로 증명된 성과 앞에서는 그 사람의 평소 언행이나 동료들과의 관계는 부차적인 참고 사항으로 밀려나기 쉽습니다.

평판 조회라는 절차가 있어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질문은 업무 능력과 성과에 집중되어 있고, 신뢰와 관련된 질문은 형식적인 한두 문항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검증하겠다는 절차조차 이미 능력을 우선순위에 두고 설계되어 있는 셈입니다.

 

실력과 신뢰는 원래 같은 자리에서 자라지 않는다

그런데 조직에 몸담아 본 사람이라면 알고 있습니다. 뛰어난 성과를 내는 사람과 끝까지 곁을 지키는 사람이 항상 같은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요. 실력은 개인의 역량에서 자라지만, 신뢰는 반복된 선택과 시간 속에서 서서히 쌓입니다.

둘은 서로 다른 뿌리를 가진 나무일지도 모릅니다. 한쪽이 무성하다고 해서 다른 쪽도 함께 무성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채용의 순간이나 인사의 순간에는 자꾸 실력이라는 화려한 잎사귀만 먼저 보게 됩니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후광 효과는 이 지점에서 정확히 작동합니다. 한 가지 영역에서 뛰어난 사람은 다른 영역에서도 뛰어날 것이라는 착시가 생기고, 조직은 그 착시를 검증 대신 확신으로 받아들입니다.

화려한 잎사귀 아래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는, 바람이 세게 불기 전까지 아무도 확인하지 않습니다.

 

배신은 어느 날 갑자기 오지 않는다

약속을 가볍게 어기는 순간, 동료의 성과를 슬쩍 가로채는 순간, 상사의 지시를 요령껏 피해 가는 순간. 이런 장면들은 처음에는 사소해 보입니다. 성과가 워낙 좋으니 그 정도는 넘어갈 수 있다고, 조직은 스스로에게 말합니다.

그러나 신뢰의 균열은 대개 이런 작은 순간들이 쌓여서 만들어집니다. 어느 날 갑자기 등을 돌리는 사람은 드뭅니다. 다만 그 균열이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성과라는 포장지 아래 오래 숨어 있었을 뿐입니다.

주변 동료들은 대개 그 신호를 먼저 눈치챕니다. 다만 성과를 내는 사람에게 이의를 제기하는 일이 부담스러워서, 혹은 자신의 판단이 틀렸을까 봐 조용히 넘어갈 뿐입니다. 그 침묵이 쌓이는 동안 균열은 조직 전체로 서서히 번져 갑니다.

많은 조직이 이 균열을 사전에 다루는 체계보다, 사고가 터진 뒤에야 작동하는 사후 대응 체계를 더 촘촘하게 갖추고 있습니다. 정보 유출이나 금전 사고처럼 눈에 보이는 손실이 발생해야 비로소 조사가 시작되고, 그전까지의 작은 신호들은 기록조차 남지 않습니다.

 

수묵화 풍의 조선시대 선비 대국 장면.

잘라내는 조직이 지키는 것과 내려놓는 것

위험 신호를 감지한 조직은 결단을 내립니다. 성과가 아무리 뛰어나도 신뢰가 흔들리는 인재는 핵심 업무에서 배제하고, 필요하다면 조직 밖으로 내보냅니다. 이 선택은 조직의 안정성을 지키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이 선택에는 값이 따릅니다. 완전하지 않지만 성실했던 다른 구성원들에게, 조직이 사람을 얼마나 쉽게 쳐내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 되기도 합니다. 안정을 얻는 대가로, 조직은 실력 있는 사람을 다시 품어볼 기회 자체를 미리 닫아버리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그 자리를 급히 메우는 과정에서 생기는 업무 공백과 인수인계의 혼란은 고스란히 남은 사람들의 몫이 됩니다. 안정을 지켰다는 결론 뒤에는, 누군가 조용히 그 비용을 떠안고 있다는 사실이 가려져 있습니다.

 

품는 조직이 거는 도박

반대로 어떤 조직은 기회를 한 번 더 줍니다. 사람은 변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중요한 자리는 아니어도 곁에 둘 자리를 마련합니다. 이 선택은 인간적이고 따뜻해 보입니다.

그러나 이 믿음이 항상 돌아오는 것은 아닙니다. 신뢰를 저버렸던 패턴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그 상처는 결국 믿음을 건넨 쪽이 고스란히 떠안는 경우가 많습니다. 품는다는 것은 다음 배신의 가능성까지 함께 껴안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일부 조직은 그 사이에서 조건부 신뢰라는 중간 지대를 만들기도 합니다. 권한은 제한하되 관찰 기간을 두고, 작은 신뢰부터 다시 쌓게 하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이 방식조차 결국은 누군가 계속 지켜봐야 한다는 피로를 조직에 남깁니다.

잘라내는 조직은 안정을 사고 가능성을 잃습니다. 품는 조직은 가능성을 사고 안정을 겁니다.

 

우리가 정말 판단하고 있는 것은 사람일까, 두려움일까

배신자형 인재를 마주할 때마다 조직은 사람을 판단한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 결정을 밀어붙이는 것은 사람에 대한 이해보다, 다시 배신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일 때가 많습니다.

두려움이 클수록 판단은 단호해지고, 단호한 판단일수록 사람을 들여다볼 여지는 줄어듭니다. 우리는 인재를 평가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우리 자신의 불안을 어떻게 다룰지를 먼저 결정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채용 기준을 성과 중심으로 더 정교하게 다듬어도, 신뢰라는 변수는 여전히 숫자 밖에 남습니다. 조직이 사람을 골라내는 시스템을 아무리 촘촘하게 짜도, 결국 그 틈을 메우는 것은 매 순간의 판단과 그 판단에 담긴 두려움의 크기일지도 모릅니다.

성과 중심의 평가 체계가 조직 전반의 표준이 되어 갈수록, 이 질문은 한 사람의 인사 결정을 넘어 조직 문화 전체의 방향을 가리키게 됩니다. 우리가 만들어 가는 시스템이 결국 사람을 더 깊이 이해하는 쪽으로 향하고 있는지, 아니면 두려움을 관리하는 쪽으로만 정교해지고 있는지는 좀처럼 답을 내리기 어려운 질문으로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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