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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on light's blog

9화. 국내여행이 해외여행보다 아쉬운 이유는 무엇인가 본문

𝓔𝓬𝓸𝓷𝓸𝓶𝔂 𝓪𝓷𝓭 𝓛𝓲𝓯𝓮𝓽𝓻𝓮𝓷/09.🛬여행이라는 소비

9화. 국내여행이 해외여행보다 아쉬운 이유는 무엇인가

raonmemory 2025. 6. 10.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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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와 유럽 항공권을 고민하는 뒷모습

제주 대신 유럽을 검색하던 밤

올해 휴가지를 고르다가 제주 항공권과 유럽 항공권을 나란히 띄워 놓았습니다. 가격 차이는 몇 배나 되었는데, 이상하게도 마음은 자꾸 유럽 쪽으로 기울었습니다. 국내 여행이 나쁠 이유는 없는데도, 이번 휴가만큼은 조금 더 특별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 마음은 어디서 온 것일까요. 국내여행은 왜 해외여행 앞에서 자꾸 아쉬운 선택이 되는 걸까요. 주변에 물어보아도 다들 비슷한 아쉬움을 이야기했습니다. 그 아쉬움에 뚜렷한 근거가 있는지는 아무도 정확히 답하지 못했습니다.

국내여행이 해외여행보다 못하다는 생각은 사실 근거가 충분하지 않은 채 널리 퍼져 있습니다. 그 아쉬움의 정체를 하나씩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낯섦의 크기가 만드는 기대

해외여행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첫 번째 이유는 낯섦의 크기입니다. 언어와 문화, 풍경과 음식이 모두 달라지니, 여행하는 내내 새로운 자극이 끊이지 않습니다. 이 낯섦은 일상에서 벗어났다는 감각을 강하게 만들어 주고, 그만큼 여행의 특별함도 커집니다.

반면 국내에서는 언어도 통하고 풍경도 어느 정도 익숙해서, 일상과 비슷한 부분이 많다는 이유로 덜 특별하게 여겨지기 쉽습니다. 실제로는 지역마다 뚜렷한 개성이 있는데도, 익숙하다는 인상이 그 개성을 가려 버리는 것입니다.

바다와 산, 섬과 내륙, 옛 도시와 새 도시는 같은 나라 안에서도 서로 전혀 다른 풍경과 음식, 사투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해외의 낯선 도시 한 곳을 하루 걷는 것만큼, 국내의 낯선 고장 한 곳을 하루 걷는 일도 충분히 새로울 수 있습니다. 다만 익숙하다는 선입견 때문에 그 새로움에 눈을 열지 않을 뿐입니다.

 

보여 주기의 무게가 더해지는 지점

해외여행이 더 매력적으로 보이는 데에는 사회적인 시선도 작용합니다. 해외 여행지의 사진은 국내 여행지의 사진보다 더 특별한 성취처럼 소비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소셜미디어에서 화려한 해외 풍경은 더 많은 반응을 얻고, 이런 반응은 다시 해외여행에 대한 동경을 키웁니다.

이 구조 속에서 국내여행은 저렴하고 가깝다는 이유로 상대적으로 평가절하됩니다. 실제로 경험의 질과는 상관없이, 어디로 다녀왔는지가 여행의 가치를 가르는 기준처럼 작동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국내여행은 오히려 가격 대비 아쉽다는 인식도 있습니다. 성수기 숙박료와 식비가 해외 못지않게 비싸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굳이 비슷한 돈을 쓸 바에야 해외로 가겠다는 계산이 서기도 합니다.

환율과 항공권 프로모션이 유리한 시기에는 실제로 해외가 국내보다 저렴한 경우도 있어서, 국내여행이 경제적이라는 오랜 인식조차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국내여행은 가깝다는 이점 외에 뚜렷하게 내세울 이유가 줄어든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안개 낀 오름 능선을 걷는 뒷모습

국내여행만이 줄 수 있는 것들

그렇다고 국내여행이 열등하다고 말할 이유는 없습니다. 오히려 국내여행에는 해외여행이 줄 수 없는 장점이 분명히 있습니다. 언어 장벽이 없어서 현지 사람들과 훨씬 깊이 있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더 세밀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동이 짧아 체력 소모도 적고, 짧은 일정으로도 자주 떠날 수 있습니다.

낯익은 풍경 속에서 새로운 면을 발견하는 즐거움도 있습니다. 매일 스쳐 지나가던 나라의 다른 지역이 전혀 다른 표정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익숙하다고 여겼던 세상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또한 국내여행은 계절과 시기를 골라 떠나기 쉽습니다. 성수기를 피해 평일에 다녀오거나 하루 이틀의 짧은 틈에도 다녀올 수 있어, 여행이 일상 가까이로 들어와 삶의 리듬을 자주 새롭게 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기준을 다시 세우는 일

국내여행과 해외여행을 비교할 때는 경험의 크기가 아니라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기준으로 삼는 것이 좋습니다. 완전한 낯섦과 큰 자극이 필요한 시기라면 해외가 어울리고, 조용한 휴식과 깊이 있는 경험이 필요한 시기라면 국내가 더 잘 맞을 수 있습니다.

어디로 떠나든 그 여행에서 무엇을 얻고 싶은지를 먼저 정해 보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목적이 분명한 여행은 장소와 상관없이 만족도가 높습니다.

이 질문은 여행을 마친 뒤 만족도를 돌아볼 때도 유용합니다. 원했던 것을 얻었다면 국내든 해외든 그 여행은 성공한 것이고, 남의 시선에 맞춘 선택이었다면 아무리 먼 곳을 다녀와도 허전함이 남을 수 있습니다.

먼 곳으로 떠나야만 특별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마음이 낯선 곳에 닿는 순간, 여행은 이미 시작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주 항공권을 결제하며

결국 그 밤 제주 항공권을 결제했습니다. 이번 휴가에는 유럽의 화려한 풍경이 아니라, 오래 미뤄 두었던 오름을 천천히 걷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결제 버튼을 누르고 나니 마음이 훨씬 가벼워졌습니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선택이 아니라 내가 진짜 원하는 선택을 했다는 실감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질문은 여기에 남습니다. 국내여행이 아쉽게 느껴지는 것은 여행 자체의 문제일까요, 아니면 우리가 여행을 바라보는 기준의 문제일까요. 그리고 어디로 가느냐보다 무엇을 얻고 싶으냐를 먼저 물을 때, 우리의 휴가지는 얼마나 달라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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