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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과 열정의 제국 | 🇫🇷 프랑스편 | 🎨 3화 그림 | 루이 14세 초상화, 실제보다 10cm 크게 그린 이유 본문
낭만과 열정의 제국 | 🇫🇷 프랑스편 | 🎨 3화 그림 | 루이 14세 초상화, 실제보다 10cm 크게 그린 이유
raonmemory 2026. 4. 13. 06:00
1701년 겨울, 파리 루브르 궁전 화실에 촛불이 밤새 켜져 있었다.
이아생트 리고라는 화가가 붓을 내려놓지 못했다. 캔버스 위에는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왼손에 홀을 쥐고, 오른손은 허리에 얹었다. 발은 발레 포즈였다. 망토는 바닥에 끌렸다. 어깨는 넓었다. 눈빛은 차가웠다. 루이 14세였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있었다. 그림 속 왕의 키가 실제보다 컸다. 누가 봐도 알 수 있을 만큼. 리고는 그것을 실수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의도한 것이었다.
루이 14세의 실제 키는 165cm였다.
17세기 프랑스 귀족 평균보다 작았다. 왕은 그것을 알았다. 귀족들도 알았다. 그러나 아무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대신 왕은 굽이 높은 구두를 신었다. 가발을 높게 썼다. 그리고 화가를 불렀다.
리고에게 주어진 임무는 단순했다. 왕을 위대하게 그려라. 그런데 위대함이란 무엇인가. 리고는 오래 생각했다. 그가 내린 답은 이것이었다. 위대함은 실제가 아니라 인식이다. 사람들이 위대하다고 느끼면 위대한 것이다. 그림은 현실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었다. 현실을 만드는 것이었다.
리고는 루이 14세를 63세 노인으로 그리지 않았다. 전성기의 왕으로 그렸다. 다리는 강건했다. 자세는 곧았다. 시선은 압도적이었다. 키는 실제보다 컸다. 발레 포즈는 왕이 직접 요청한 것이었다. 루이 14세는 젊은 시절 궁정 발레에서 태양신 아폴론을 연기했다. 그 기억을 그림 속에 남기고 싶었다. 늙어가는 몸 위에 젊음을 덧씌웠다.

이 초상화가 완성되자 루이 14세는 베르사유에 걸어두려 했다.
그런데 스페인 왕 펠리페 5세가 먼저 달라고 했다. 루이 14세의 손자였다. 외교적 선물로 보내기엔 이보다 좋은 것이 없었다. 왕은 리고에게 똑같은 그림을 하나 더 그리라고 했다. 리고는 두 번째 그림을 완성했다. 첫 번째와 거의 같았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안다. 두 그림 사이에 미묘한 차이가 있다. 첫 번째가 조금 더 강렬하다. 리고가 왕에게 바친 진짜 작품이 어느 것인지는 분명했다.
베르사유에 걸린 초상화는 이후 백 년 동안 왕의 역할을 했다. 루이 14세가 죽고 나서도 그림은 남았다. 루이 15세, 루이 16세 시대에도 그 초상화가 회랑에 걸려 있었다. 방문객들은 그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165cm의 노인이 그린 것이 아니었다. 권력 그 자체가 거기 서 있었다.
리고의 성공은 베르사유의 화가들에게 하나의 공식을 남겼다.
왕을 그릴 때 현실을 그리면 안 된다. 왕이 원하는 모습을 그려야 한다. 이것은 아첨이 아니었다. 생존이었다. 왕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화가는 궁정에서 쫓겨났다. 마음에 들면 연금이 나오고 작업실이 생겼다. 부와 명예가 따라왔다.
샤를 르브룅이라는 화가가 있었다. 루이 14세의 초대 수석 화가였다. 그는 베르사유 천장화를 총괄했다. 거울의 방 천장에 루이 14세의 전쟁 승리 장면을 그렸다. 왕은 신처럼 묘사됐다. 구름 위에서 내려다보는 존재. 인간이 아니라 신화였다.
르브룅은 이 작업으로 막대한 부를 얻었다. 그러나 루이 14세의 총신 콜베르가 죽자 상황이 바뀌었다. 새로운 실력자 루부아가 르브룅을 밀어냈다. 루부아가 지원하는 화가가 따로 있었다. 르브룅은 수석 화가 자리를 잃었다. 죽을 때까지 그 자리를 되찾지 못했다.
베르사유의 화가는 붓을 쥐었지만 운명은 쥐지 못했다.
1789년, 혁명이 터졌다.
베르사유 궁전에 군중이 몰려들었다. 귀족들이 도망쳤다. 왕실 가구와 물건들이 약탈됐다. 그러나 리고의 루이 14세 초상화는 살아남았다. 혁명 정부가 그것을 루브르로 옮겼다. 왕을 찬미하는 그림이었지만 버리지 않았다. 예술로서의 가치가 정치적 의미를 넘어섰다.
지금 루브르 박물관에 가면 그 초상화를 볼 수 있다. 165cm의 왕이 거인처럼 서 있다. 발레 포즈로. 굽 높은 구두를 신고. 망토를 끌며. 관광객들은 사진을 찍는다. 웅장하다고 한다. 아름답다고 한다.
그러나 그 그림이 처음 완성됐을 때, 리고가 캔버스 앞에 서서 생각한 것은 아름다움이 아니었다. 살아남는 것이었다. 왕을 만족시키는 것이었다. 진실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권력이 원하는 진실을 그리는 것이었다.
낭만과 열정의 제국에서 그림은 거울이 아니었다. 권력이 자신을 비추고 싶은 모습을 담은 창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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