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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on light's blog

🏰세계로 퍼진 유럽의 달콤함 제3부 🇭🇰 38화 : 홍콩 식민지의 두 얼굴, 에그 타르트 본문

ℰ𝓾𝓻𝓸𝓹/🏰제3부:(29~40화): 세계로 번진 왕실의 단맛

🏰세계로 퍼진 유럽의 달콤함 제3부 🇭🇰 38화 : 홍콩 식민지의 두 얼굴, 에그 타르트

raonmemory 2026. 1. 1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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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테이블 위에 에그 타르트와 찻잔

1950년대 홍콩 센트럴 지역, 영국인 거주 구역 바로 옆에 중국인 제과점이 하나 문을 열었습니다. 주인 할아버지는 매일 아침 에그 타르트를 구웠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영국인들이 들어와서는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이건 우리 타르트가 아닌데?" 하지만 중국인들도 낯설어했습니다. "이게 우리 음식인가?" 에그 타르트는 누구의 것도 아니면서 동시에 모두의 것이었습니다. 영국의 커스터드 타르트도 아니고, 중국의 단황수도 아닌, 홍콩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새로운 음식이었습니다.
영국인 손님은 타르트가 너무 달다고 불평했고, 중국인 손님은 반죽이 너무 버터 맛이 강하다고 했습니다. 주인은 아무 말 없이 타르트를 계속 구웠습니다. 두 문화 사이 어디쯤, 어느 쪽도 완전히 만족시킬 수 없지만 양쪽 모두가 먹을 수 있는 그 지점을. 식민지에서 사는 사람들은 늘 이런 식이었습니다. 완벽한 소속감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배제되지도 않았습니다. 에그 타르트는 홍콩의 정체성 그 자체였습니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기에, 오히려 홍콩 그 자체가 될 수 있었습니다.

포르투갈에서 시작해 영국을 거쳐 온 여정

에그 타르트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포르투갈 파스텔 데 나타에 닿습니다. 16세기 마카오에 정착한 포르투갈인들이 이 레시피를 가져왔고, 19세기 영국이 홍콩을 식민지로 삼으면서 영국식 커스터드 타르트가 들어왔습니다. 두 타르트는 비슷하면서도 달랐습니다. 포르투갈 것은 겉이 캐러멜처럼 탔고, 영국 것은 매끈했습니다. 홍콩은 이 둘 사이 어딘가를 선택했습니다. 아니, 선택이 아니라 타협이었습니다.
1920년대 홍콩의 제과점들은 묘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영국인 고객을 끌어들이려면 영국식 디저트를 만들어야 했고, 중국인 고객을 위해서는 중국식 단맛을 고려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둘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는 없었습니다. 영국인은 덜 달게, 중국인은 더 달게 원했습니다. 크기도 달랐습니다. 영국인은 큰 타르트 하나를, 중국인은 작은 타르트 여러 개를 선호했습니다. 제과점 주인들은 고민 끝에 중간 지점을 찾았습니다. 중간 크기, 중간 단맛, 중간 굽기. 누구도 완벽하게 만족하지 못하지만, 누구도 거부하지 않는 지점이었습니다.
이 타협의 산물이 홍콩 에그 타르트가 되었습니다. 영국식 퍼프 페이스트리를 쓰되, 중국식으로 더 얇고 바삭하게 만들었습니다. 커스터드는 포르투갈식보다 덜 달지만, 영국식보다는 달았습니다. 굽는 온도도 절묘했습니다. 겉이 약간 노릇하지만 타지는 않게. 이 모든 조정은 의도된 디자인이 아니었습니다. 살아남기 위한 필사적인 적응이었습니다. 식민지 상인들은 두 권력 사이에서 균형을 맞춰야 했고, 그 균형이 새로운 맛을 만들어냈습니다.

차관과 딤섬 사이, 에그 타르트의 위치

1960년대 홍콩에는 두 종류의 찻집이 있었습니다. 영국식 티룸과 중국식 차관이었습니다. 영국식 티룸에서는 오후 3시에 차와 함께 에그 타르트가 나왔습니다. 은빛 접시에 담겨, 포크로 먹었습니다. 중국식 차관에서는 아침부터 에그 타르트를 팔았습니다. 대나무 찜통에 담긴 딤섬 옆에 놓였고, 손으로 집어 먹었습니다. 같은 타르트였지만, 먹는 맥락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홍콩 사람들이 양쪽을 오갔다는 것입니다. 아침에는 차관에서 에그 타르트로 하루를 시작하고, 오후에는 영국식 카페에서 차와 함께 또 한 번 먹었습니다. 타르트는 두 세계를 연결하는 다리였습니다. 영국인 상사와 회의할 때는 영국식 매너로 먹었고, 중국인 가족과 함께할 때는 중국식으로 먹었습니다. 같은 음식이지만 맥락에 따라 의미가 바뀌었습니다. 이것이 식민지에서 사는 기술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이중성은 편안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홍콩 사람들은 자신이 어디에 속하는지 혼란스러워했습니다. 영국인은 아니었지만 영국 문화에 익숙했고, 중국인이었지만 본토 중국과는 달랐습니다. 에그 타르트를 먹을 때마다 이 정체성의 문제가 떠올랐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타르트는 답을 주지 못했습니다. 다만 질문을 계속 던졌습니다. 그 질문 속에서 홍콩 사람들은 자신만의 정체성을 만들어갔습니다. 영국도 아니고 중국도 아닌, 홍콩이라는 정체성을.

1997년 반환, 변하지 않은 타르트

1997년 7월 1일,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되었습니다. 영국 국기가 내려가고 중국 국기가 올라갔습니다. 많은 것이 바뀔 것이라 예상되었습니다. 하지만 에그 타르트 가게들은 그대로였습니다. 아침이면 여전히 오븐에서 타르트가 구워졌고, 사람들은 줄을 서서 샀습니다. 정권이 바뀌어도 아침 식사는 바뀌지 않았습니다. 에그 타르트는 변화 속에서 변하지 않는 것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흥미롭게도 반환 이후 에그 타르트는 더 인기를 얻었습니다. 홍콩 사람들은 사라질지도 모르는 것들을 붙잡기 시작했습니다. 광동어, 홍콩식 차관, 그리고 에그 타르트. 이것들이 홍콩다움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처럼 느껴졌습니다. 에그 타르트 가게는 단순한 제과점이 아니라, 정체성을 확인하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나는 여전히 홍콩 사람이다"라고 말하는 방법 중 하나가 에그 타르트를 먹는 것이었습니다.
본토에서 온 중국인 관광객들도 에그 타르트를 찾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찾는 의미는 달랐습니다. 그들에게 홍콩 에그 타르트는 이국적인 경험이었습니다. 같은 중국이지만 다른 중국, 서양의 영향을 받은 중국. 호기심과 약간의 우월감이 섞인 시선으로 타르트를 먹었습니다. 홍콩 사람들은 이 시선을 느꼈고, 불편했습니다. 에그 타르트는 다시 한번 정체성의 문제를 드러냈습니다. 우리는 같은가, 다른가. 타르트는 여전히 답하지 않았습니다.

타이파와 차찬텡, 두 가지 에그 타르트

오늘날 홍콩에는 두 종류의 에그 타르트가 공존합니다. 포르투갈식에 가까운 '타이파(澳門式)' 타르트와 홍콩 전통 방식의 '차찬텡(茶餐廳)' 타르트입니다. 타이파는 마카오에서 건너온 것으로, 겉이 캐러멜처럼 타고 속은 부드럽습니다. 차찬텡 타르트는 겉이 매끈하고 단맛이 덜합니다. 관광객들은 타이파를 선호하지만, 홍콩 사람들은 차찬텡 타르트를 더 많이 먹습니다. 이 선택 자체가 정체성의 표현입니다.
홍콩의 오래된 차찬텡에서는 여전히 전통 방식을 고수합니다. 매일 아침 직접 반죽을 만들고, 커스터드를 끓이고,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타르트 틀에 채웁니다. 기계를 쓰면 더 빠르고 효율적이지만, 맛이 다르다고 합니다. 무엇이 다른지 정확히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홍콩 사람들은 압니다. 손으로 만든 타르트에는 시간이 담겨 있다는 것을. 식민지 시절부터 이어져 온 시간, 반환 이후의 혼란, 그리고 여전히 계속되는 일상의 시간이.
최근 젊은 세대는 에그 타르트를 새롭게 해석하기 시작했습니다. 말차 타르트, 초콜릿 타르트, 치즈 타르트. 전통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기본형 에그 타르트가 가장 많이 팔립니다. 변화는 필요하지만, 완전히 바꿀 수는 없습니다. 이것이 홍콩의 딜레마입니다. 앞으로 나아가되 과거를 잃지 않아야 하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되 정체성을 지켜야 합니다. 에그 타르트는 여전히 그 딜레마 한가운데 있습니다.

2024년, 타르트가 말하는 홍콩의 현재

홍콩 거리를 걷다 보면 에그 타르트 가게는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전만큼 많지는 않습니다. 임대료가 올라 작은 차찬텡들이 하나둘 문을 닫고 있습니다. 체인점들이 그 자리를 차지합니다. 맛은 표준화되고, 가격은 올라가고, 이야기는 사라집니다. 홍콩 사람들은 이 변화를 안타까워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것도 홍콩이니까." 변화를 받아들이며 사는 것, 그것이 홍콩의 방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래된 가게 몇 곳은 버티고 있습니다. 60년, 70년을 같은 자리에서 타르트를 구운 곳들입니다. 아침 6시면 오븐이 켜지고, 오후 6시면 문을 닫습니다. 남은 타르트는 팔지 않습니다. 신선함이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고집이 가게를 지켜왔습니다. 손님들도 이 고집을 존중합니다. 조금 비싸고, 조금 불편해도 찾아갑니다. 거기에 홍콩이 있기 때문입니다.
에그 타르트는 여전히 두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식민지의 유산이면서 홍콩의 정체성이고, 과거의 상징이면서 현재의 일상입니다. 이 모순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 홍콩입니다. 타르트는 그 모순을 맛으로 보여줍니다. 달콤하지만 씁쓸하고, 부드럽지만 단단합니다. 한 입 베어 물 때마다, 홍콩 사람들은 자신의 역사를 씹습니다.


그래서 이런 느낌이 남습니다.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하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홍콩 에그 타르트는 포르투갈도, 영국도, 중국도 아닌 홍콩 그 자체입니다. 타협에서 태어났지만, 이제는 독립된 정체성이 되었습니다. 식민지의 상처는 남아 있지만, 그 상처에서 새로운 문화가 자랐습니다. 타르트 한 조각에, 홍콩의 모든 시간이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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