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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on light's blog

6화. 공간을 꾸미는 것은 취향인가, 도파민 사냥인가 본문

𝓔𝓬𝓸𝓷𝓸𝓶𝔂 𝓪𝓷𝓭 𝓛𝓲𝓯𝓮𝓽𝓻𝓮𝓷/10.🧩시대의 조각들

6화. 공간을 꾸미는 것은 취향인가, 도파민 사냥인가

raonmemory 2025. 6. 16.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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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 바닥에 앉아 러그 색상 샘플을 고민하는 뒷모습.

석 달마다 바뀌는 거실

거실 러그를 바꾼 지 두 달 만에 또 새로운 러그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지난번 러그도 마음에 들었었는데, 이상하게 조금 지나면 다른 색과 질감이 궁금해집니다. 소품 하나를 새로 들이면 며칠은 그 공간이 특별하게 느껴지다가, 어느새 다시 익숙해지고 또 새로운 것을 찾게 됩니다. 이 반복을 알아차리고 나니 궁금해졌습니다. 나는 정말 이 공간을 가꾸고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새로움이 주는 짧은 자극을 계속 좇고 있는 것일까요.

공간을 꾸미는 일은 분명 즐거운 취향의 영역입니다. 그런데 그 즐거움의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다면, 그 즐거움의 정체를 한 번쯤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공간이 주는 정서적 안정

자신이 머무는 공간을 가꾸는 일은 오래전부터 사람들에게 중요한 활동이었습니다. 편안하고 아름다운 공간은 실제로 심리적 안정에 도움을 줍니다. 정돈된 공간에서 마음이 편해지고, 좋아하는 색과 물건으로 채워진 방에서 위안을 얻는 것은 자연스러운 감정입니다.

최근 몇 년 사이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난 것도 이 관심을 더 키웠습니다. 집이 단순히 잠자는 곳이 아니라 일하고 쉬고 즐기는 다목적 공간이 되면서, 그 공간을 잘 가꾸는 일의 중요성도 함께 커졌습니다.

실제로 좋아하는 색과 물건으로 채운 공간에서 지내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공간에서 지내는 사람들보다 스트레스 지수가 낮다는 조사 결과도 있습니다. 이는 공간을 가꾸는 일이 단순한 사치가 아니라 삶의 질과 직결된 활동임을 보여 줍니다.

 

새로움이 주는 짧은 자극

문제는 이 관심이 SNS와 만나면서 다른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잘 꾸며진 공간을 끊임없이 보게 되면서, 내 공간도 계속 새로워야 한다는 압박이 은근히 자랍니다. 새 소품을 들일 때 느끼는 짧은 설렘은 뇌에서 보상을 담당하는 부분을 자극하는데, 이 자극은 물건 자체보다 새로움이라는 사실 자체에서 나옵니다.

이 자극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소품은 배경처럼 익숙해지고, 다시 새로운 자극이 필요해집니다. 이 순환이 반복되면 공간을 꾸미는 행위는 취향을 완성해 가는 과정이 아니라, 짧은 자극을 계속 소비하는 습관이 됩니다.

온라인 쇼핑몰과 콘텐츠들은 이 순환을 부추기는 방향으로 작동합니다. 계절마다, 유행마다 새로운 인테리어 소품이 제안되고, 그 제안을 따라가다 보면 집 안은 계속 바뀌지만 정작 그 공간에 대한 만족감은 크게 늘지 않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런 소비가 반복되면 정작 처음에 큰맘 먹고 산 가구나 소품은 몇 년째 그대로인데, 작은 소품들만 계속 교체되는 기이한 풍경이 만들어집니다. 공간의 중심은 그대로인데 그 위를 스쳐 가는 것들만 빠르게 바뀌는 셈입니다.

소파 위 쿠션 커버를 만지며 생각에 잠긴 남자.

완성이 아니라 순환이 되어 버린 취향

취향은 원래 시간을 두고 쌓이며 완성되어 가는 것입니다. 여러 시도를 거쳐 자신에게 맞는 색과 형태를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취향을 만드는 여정입니다. 그런데 새로움을 좇는 순환에 갇히면 이 여정이 끝없이 반복되기만 할 뿐 완성에 이르지 못합니다. 매번 새로 시작하는 느낌만 있고, 쌓여 가는 감각은 옅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공간을 꾸미는 즐거움의 성격도 달라집니다. 취향을 찾아가는 즐거움에서, 다음에 무엇을 살지 찾는 즐거움으로 무게 중심이 옮겨 갑니다. 이 두 즐거움은 겉보기엔 비슷하지만 방향이 전혀 다릅니다.

이 차이를 알아차리지 못하면, 몇 년이 지나도 자신만의 확실한 취향 하나 갖지 못한 채 유행만 좇았다는 허탈함이 남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방향을 알고 소비하면,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진짜 나에게 맞는 스타일을 찾아내는 뿌듯함을 얻게 됩니다.

 

자극과 취향을 구분하는 질문

새 소품을 들이기 전에 스스로에게 물어볼 만한 질문이 있습니다. 이 물건이 지금 이 공간에 정말 필요한 변화를 만들어 주는지, 아니면 그저 새롭다는 이유만으로 끌리는 것인지를 구분해 보는 것입니다. 전자라면 그 소비는 취향을 완성해 가는 과정이고, 후자라면 짧은 자극을 좇는 순환의 일부일 가능성이 큽니다.

또한 이미 가진 물건들의 배치를 바꾸어 보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느낌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새로 사지 않고도 공간에 변화를 줄 수 있는 방법은 생각보다 많습니다.

가구 위치를 바꾸거나, 계절에 맞추어 원래 있던 소품을 꺼냈다 넣었다 하는 정도의 작은 변화만으로도 공간은 충분히 새로워집니다. 이런 방법은 지갑에도, 취향을 쌓아 가는 과정에도 훨씬 이롭습니다.

 

러그를 다시 내려놓으며

결국 새 러그는 사지 않았습니다. 대신 가구 배치를 조금 바꾸고, 오래 넣어 두었던 쿠션 커버를 꺼내 씌웠습니다. 비용은 거의 들지 않았지만 공간의 느낌은 확실히 달라졌습니다. 이 작은 변화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결국 질문은 여기에 남습니다. 내가 이 공간에서 정말 찾고 있는 것은 완성된 나만의 취향일까요, 아니면 계속되는 새로움의 자극일까요. 그리고 그 둘을 구분하는 습관이 자리 잡으면, 우리의 공간은 얼마나 더 온전히 나의 것이 될 수 있을까요.

다음에 새 소품이 눈에 들어오면, 먼저 집 안을 한 바퀴 둘러보며 이미 가진 것들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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