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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과 열정의 제국 | 🇬🇧🇮🇹 영국·이탈리아편 | 🎵 62화 | 파가니니, 악마와 계약했다는 소문의 진실 본문
낭만과 열정의 제국 | 🇬🇧🇮🇹 영국·이탈리아편 | 🎵 62화 | 파가니니, 악마와 계약했다는 소문의 진실
raonmemory 2026. 10. 14. 07:001813년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 니콜로 파가니니가 무대에 섰습니다. 객석은 가득 찼습니다. 연주가 시작됐습니다. 첫 번째 악장이 끝날 무렵, 관객 중 몇 명이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연주가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무대 위에서 악마의 형상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파가니니의 그림자 옆에 다른 존재가 서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날 이후 소문이 이탈리아 전역으로 퍼졌습니다. 파가니니는 악마와 계약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인간이 저런 소리를 낼 수 없다.

파가니니는 1782년 제노바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안토니오는 항구 노동자였고, 만돌린을 취미로 연주했습니다. 아들의 손가락이 유달리 길고 유연하다는 것을 일찍 알아챘습니다. 다섯 살 때 만돌린을 쥐여줬고, 이듬해 바이올린으로 바꿨습니다.
파가니니의 손은 실제로 달랐습니다. 손가락 관절이 보통 사람보다 훨씬 유연하게 구부러졌습니다. 나중에 의학계는 이것을 마르판 증후군 혹은 엘러스-단로스 증후군과 연관 지었습니다. 결합 조직이 일반인보다 훨씬 유연한 유전적 특성이었습니다. 손가락이 거의 두 배에 가까운 범위로 움직였습니다. 바이올린에서 다른 연주자가 두 번에 나눠 짚어야 하는 음을 그는 한 손으로 동시에 짚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파가니니는 어린 시절부터 하루 열 시간 이상 연습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연습을 강요했고, 식사를 거르게 하기도 했습니다. 타고난 신체 조건과 극단적인 훈련이 결합된 결과였습니다.
악마와의 계약이 아니라, 인간이 한계까지 밀어붙인 결과였습니다.
파가니니의 연주는 당시 기준으로 설명이 안 됐습니다. 현 하나로 완결된 악장을 연주했습니다. 다른 현 세 개를 쓰지 않았습니다. 활을 쓰지 않고 손가락으로 현을 퉁기는 피치카토를 오른손으로 하면서 동시에 왼손으로 멜로디를 짚었습니다. 하모닉스, 즉 현의 특정 지점을 가볍게 짚어 배음만 울리는 주법을 곡 전체에 사용했습니다. 이 소리는 인간 목소리와도, 다른 악기와도 달랐습니다.
관객들이 초자연적인 것을 떠올린 것은 이해할 수 있는 반응이었습니다. 그들이 들어본 적 없는 소리였으니까요.
파가니니는 이 소문을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활용했습니다. 무대에 등장할 때 느리게 걷고, 말랐고 창백한 외모를 유지했습니다. 소문이 퍼질수록 공연 티켓값이 올랐습니다. 그는 사업가이기도 했습니다.

이탈리아를 넘어 유럽으로 나간 것은 1820년대였습니다. 빈, 파리, 런던. 도시마다 반응은 비슷했습니다. 공연장이 가득 찼고, 귀족들이 앞줄을 채웠습니다.
런던에서의 공연은 특히 기록이 많습니다. 1831년 킹스 시어터에서의 첫 공연 이후 런던 언론들이 앞다퉈 파가니니를 다뤘습니다. 한 평론가는 그의 연주를 듣는 것이 인간 능력의 범위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고 썼습니다. 다른 평론가는 악마 이야기가 허황되지 않다고 느꼈다고 했습니다.
괴테가 파가니니의 연주를 들었습니다. 하이네도 들었습니다. 슈만은 파가니니의 악보를 피아노 곡으로 편곡했습니다. 리스트는 파가니니를 직접 보고 자신도 피아노에서 그와 같은 경지에 오르겠다고 결심했다고 전해집니다.
파가니니가 지나간 자리마다 다음 세대 음악가들의 방향이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파가니니의 사생활은 공연만큼 화제였습니다. 여러 도시에서 연인 관계가 있었고, 사생아를 낳기도 했습니다. 도박을 즐겼고, 한때 도박 빚으로 바이올린을 잃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어떤 도시에서는 사기 혐의를 받기도 했습니다.
교회는 파가니니를 불편하게 여겼습니다. 악마와의 계약 소문이 사라지지 않았고, 그가 그 소문을 스스로 키웠기 때문에 교회 입장에서는 묵과하기 어려웠습니다. 파가니니가 1840년 니스에서 사망했을 때, 처음에 교회는 가톨릭식 장례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유해는 수년간 안장되지 못하고 옮겨다녔습니다. 정식 매장이 허락된 것은 사망 후 36년이 지난 1876년이었습니다.
살아서는 악마의 음악으로 유럽을 사로잡았고, 죽어서는 악마의 소문으로 땅에 묻히지 못했습니다.
파가니니가 남긴 악보들은 지금도 바이올리니스트들에게 최고 난도의 기준입니다. 24개의 카프리스, 바이올린 협주곡들, 현 하나를 위한 소나타들. 그 곡들은 그가 직접 연주하기 위해 썼기 때문에, 오랫동안 다른 연주자들이 완주하기 어렵다고 여겨졌습니다. 지금도 카프리스 24번은 바이올린 기교의 정점으로 꼽힙니다.
악마와 계약했다는 소문의 진실은 단순합니다. 파가니니는 남다른 신체 조건을 타고났고, 그것을 극단까지 훈련시켰으며, 그 결과를 대중이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무대에서 펼쳤습니다. 소문을 부정할 이유도 없었습니다. 소문이 곧 흥행이었으니까요.
제노바 항구 노동자의 아들이 유럽 전역의 귀족들을 무대 앞으로 끌어모았습니다. 그가 쓴 도구는 바이올린 한 자루였습니다.
그 소리가 어디서 왔는지, 지금은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그 소리는 여전히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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