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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계보: 유럽 요리를 만든 셰프들]🔥 3부: 불의 민주화 - 펠레그리노 아르투시 본문
[불의 계보: 유럽 요리를 만든 셰프들]🔥 3부: 불의 민주화 - 펠레그리노 아르투시
raonmemory 2025. 11. 26. 13:00
1. 분열된 이탈리아, 상인의 아들 (1820년, 포를리폼폴리)
1820년, 이탈리아는 존재하지 않았다.
로마냐 지역의 작은 마을 포를리폼폴리에서, 한 소년이 태어났다. 그의 이름은 펠레그리노 아르투시.
당시 이탈리아 반도는 여러 왕국과 공국으로 나뉘어 있었다. 베네치아, 토스카나, 나폴리, 시칠리아...
각 지역은 다른 언어를 쓰고, 다른 화폐를 사용했으며, 다른 음식을 먹었다.
아르투시의 아버지는 곡물 상인이었다. 그는 이탈리아 전역을 돌아다니며 장사를 했다.
"펠레그리노."
어느 날, 아버지가 말했다.
"이 땅의 사람들은 모두 다른 말을 하지. 피렌체 사람은 토스카나어를, 볼로냐 사람은 에밀리아어를,
나폴리 사람은 나폴리어를 쓴다네."
"그럼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없나요?"
"글쎄... 아마 언젠가는. 하지만 언어가 다르면, 마음도 다르지."
아르투시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는 알아챘다. 한 가지는 같다는 것을.
음식.
2. 이탈리아 통일 운동과 요리의 역할 (1861년, 피렌체)
1861년, 이탈리아 왕국이 선포되었다.
가리발디의 붉은 셔츠단이 남부를 통일했고, 사르데냐의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가 이탈리아의 왕이 되었다.
하지만 통일은 지도에만 있었다.
41살의 아르투시는 피렌체에서 상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는 이제 성공한 사업가였다.
어느 날, 그는 거리에서 두 사람이 다투는 것을 보았다.
"나는 밀라노 사람이야! 넌 나폴리 사람이고!" "그래서? 우린 이제 같은 이탈리아 사람 아닌가!" "이탈리아? 그런 건 없어.
우린 그냥... 억지로 붙어 있을 뿐이지."
아르투시는 그날 밤, 오래 생각했다.
국가는 만들어졌지만, 국민은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
지도는 하나가 되었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여전히 갈라져 있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하나라고 느낄 수 있을까?"
그는 문득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음식.
3. 집필 시작, 가정 요리의 기록 (1891년, 피렌체)
1891년, 아르투시는 71살이었다.
그는 은퇴했고, 시간이 많았다. 그리고 그는 결심했다.
이탈리아 요리를 기록하겠다.
하지만 카렘이나 에스코피에와는 다르게, 그는 셰프가 아니었다. 그는 평생 주방에서 일한 적이 없었다.
대신, 그는 먹는 사람이었다.
그는 이탈리아 전역을 여행하며 음식을 먹었다. 피렌체의 비스테카, 볼로냐의 라구, 나폴리의 피자, 시칠리아의 카놀리...
그는 펜을 들었다.
《이탈리아 요리의 과학과 좋은 식사의 예술 La scienza in cucina e l'arte di mangiar bene》
하지만 이건 왕실을 위한 책이 아니었다.
이건 가정을 위한 책이었다.
"저는 평범한 사람들을 위해 씁니다. 궁전이 아니라 집에서, 주방장이 아니라 어머니가 만드는 요리를 위해."
4. 지역 요리의 수집, 이탈리아를 만나다 (1891-1895년)
아르투시는 펜을 들고, 이탈리아 전역을 다시 여행했다.
토스카나에서, 그는 리볼리타(빵 수프)를 배웠다. 에밀리아에서, 그는 토르텔리니(고기 만두)를 기록했다. 나폴리에서,
그는 라구 소스의 비법을 물었다. 시칠리아에서, 그는 아란치니(쌀 튀김)를 맛보았다.
각 지역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요리를 자랑스러워했다.
"이게 진짜 이탈리아 요리야!"
하지만 아르투시는 알았다.
모두가 옳았다.
왜냐하면 이탈리아 요리는 하나가 아니라 여럿의 합이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볼로냐의 한 할머니가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왜 우리 요리를 기록하는 거요?"
"이 요리들이 사라지게 하고 싶지 않아서입니다."
"사라진다고요? 우린 매일 이걸 만드는데?"
"하지만 다음 세대는요? 아이들이 도시로 떠나면요? 누가 이 요리를 기억할까요?"
할머니는 침묵했다.
그리고 천천히 말했다.
"그럼 정확히 쓰시오. 재료 하나하나, 과정 하나하나 다."
5. 책 출판 거절과 자비 출판의 결심 (1891년)
1891년 가을, 아르투시는 원고를 완성했다.
790개의 레시피. 각 지역의 요리들이 모두 담겨 있었다.
그는 출판사를 찾아갔다.
"거절합니다."
첫 번째 출판사의 대답이었다.
"왜죠?"
"누가 이런 걸 사겠습니까? 귀족들은 프랑스 요리를 원하고, 평민들은 책을 살 돈이 없습니다."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모두 거절했다.
"이탈리아 요리? 그런 건 없습니다. 각 지역 요리만 있을 뿐이죠."
아르투시는 화가 났다.
"그래서 내가 만들려는 겁니다! 이탈리아 요리를!"
마침내, 그는 결심했다.
자비 출판.
자신의 돈으로, 1,000부를 인쇄했다.

6. 입소문과 이탈리아 국민 요리책의 탄생 (1895년)
첫 1,000부는 천천히 팔렸다.
하지만 책을 산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말했다.
"이 책, 정말 좋아. 우리 할머니 요리가 여기 다 있어."
"나폴리 사람인데, 밀라노 요리를 처음 만들어봤어. 신기하더라."
"이거 보니까... 우리가 생각보다 비슷하네. 재료만 조금씩 다르지, 방식은 비슷해."
입소문이 퍼졌다.
아르투시는 2판을 인쇄했다. 그리고 3판, 4판...
사람들은 편지를 보내왔다.
"제 할머니 레시피를 추가해주세요." "이 요리는 이렇게 만드는 게 더 나아요." "당신 덕분에 우리 가족이 다시 모였습니다."
아르투시는 모든 피드백을 읽고, 책을 계속 업데이트했다.
마지막 판에는 790개에서 시작해 900개가 넘는 레시피가 실렸다.
7. 통일 이후 이탈리아의 정체성 형성 (1900년, 피렌체)
1900년, 아르투시는 80살이었다.
그의 책은 이제 이탈리아 전역에서 읽히고 있었다.
어느 날, 한 젊은 여성이 그를 찾아왔다.
"저는 밀라노 사람과 결혼했어요. 처음엔 그의 가족 요리가 낯설었죠."
"그런데요?"
"당신의 책을 보고 만들어봤어요. 그랬더니... 그들이 좋아하더라고요. 그리고 저도 우리 집 요리를 만들어줬어요."
여성은 미소 지었다.
"이제 우리 식탁에는 밀라노 요리도 있고, 토스카나 요리도 있어요. 우린 이제 이탈리아 가족이에요."
아르투시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였다.
그가 원했던 것은.
8. 마지막 레시피, 국민을 위한 유산 (1911년, 피렌체)
1911년, 아르투시는 91살이었다.
그는 병상에 누워 있었다.
그의 침대 옆에는, 그의 책이 놓여 있었다. 이제 14판이 되었고, 수십만 부가 팔렸다.
친구가 물었다.
"펠레그리노, 당신은 성공했소. 이탈리아에서 당신 책을 모르는 사람이 없소."
"성공... 그런 건 중요하지 않소."
"그럼 뭐가 중요하오?"
아르투시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거리를 보시오. 저기 걷는 사람들. 밀라노 사람도, 나폴리 사람도, 시칠리아 사람도 있겠지."
"그렇겠지요."
"하지만 그들이 집에 가서 저녁을 먹을 때, 그들은 같은 음식을 먹을 수 있소. 그게 중요하오."
그는 눈을 감았다.
"음식은 말보다 강하오. 같은 음식을 먹는 사람들은, 결국 같은 사람이 되오."
1911년 3월 30일, 아르투시는 죽었다.
9. 이탈리아 요리의 아버지, 아르투시의 유산
아르투시가 죽은 후, 그의 책은 계속 출판되었다.
오늘날까지, 《이탈리아 요리의 과학과 좋은 식사의 예술》은 이탈리아 가정의 필수서로 남아 있다.
펠레그리노 아르투시는 셰프가 아니었다. 그는 기록자였다.
그는 이탈리아 각 지역의 요리를 모으고, 정리하고, 기록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는 이탈리아 요리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
통일 이후 이탈리아는 여전히 분열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자신을 이탈리아 사람이 아니라 토스카나 사람,
시칠리아 사람으로 여겼다. 하지만 아르투시의 책은 그들에게 공통의 언어를 주었다.
음식이라는 언어.
카렘이 요리를 권력의 예술로 만들었다면, 에스코피에가 요리를 시스템으로 만들었다면, 아르투시는 요리를
국민의 정체성으로 만들었다.
그의 책은 단순한 레시피 모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국가를 만드는 도구였다.
오늘날 우리가 아는 이탈리아 요리 - 파스타, 리조또, 티라미수 - 의 기초는 모두 아르투시의 책에서 시작되었다.
"국가는 국경으로 만들어지지만, 국민은 식탁에서 만들어진다."
아르투시가 요리를 민중에게 돌려줄 때,
프랑스에서는 요리가 국경을 넘고 있었다.
한 셰프가 프랑스 요리를 영국으로 가져갔다.
그의 이름은 샤를 엘메 프랑카텔리였다.
3부 끝
다음 편: 4부 - 불의 번역 (샤를 엘메 프랑카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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